호모 루덴스_Homo ludens를 위해

현생인류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_Homo sapiens라고 배웠다. 이성적인 생각하는 인류라는 개념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인류가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역사와 우리의 삶에서 보아왔다. 아이를 출산하면서 그리고 양육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비슷하다고 그룹화할 수는 있지만, 인간은 각기 다 다르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당신은 어떤 유형의 사람인가? ‘도구적 인간’, 즉 호모파베르_Homo Faber인가? 아니면 상반되는 뜻의 호모루덴스인가? ‘일하는 사람_working man’을, 후자는 ‘노는 사람_playing man’을 얘기한다. 하지만 인간은 사실 호모파베르와 호모루덴스의 특성을 모두 갖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는 어떤 인류가 살아남을 것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해 물리적, 생물학적 디지털적 세계와 연관된 직업군을 준비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과적 사고를 위한 사고력 수학 문제를 풀고 코딩을 초등 때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답은 창의적이고 융합적 인재 ?? 하지만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해야 할까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걸 알면 머리가 맑아진다. 역으로 부모의 교육 방향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얘기할 수 있다. 모순적으로 저희가 받아왔던 우리가 아는 교육과 다른 방향이라는 확신이 든다. 아이들이 스스로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해야 할까요?

저의 선택은 놀이입니다.
놀이라는 것은 개인적으로 혼자 노는 것과 그룹으로 노는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다. 요한 하위징아_Johan Huizinga는 놀이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그것은 곧 마음(정신)의 존재로 인정하는 것이다. 놀이를 어떻게 정의하든 그것은 물질이 아닌 까닭이다. 우리 인간은 놀이하고 또 자신이 놀이한다는 것을 안다. 이런 놀이의 비합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합리적 존재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놀이는 고차원적이고 추상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먼저 영어 단어 “play”에 상응하는 현대 유럽 언어들의 단어를 살펴보면 그 놀이 개념은 이렇게 정의된다.
놀이는 특정 시간과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복 혹은 몰입 행위로서, 자유롭게 받아들여진 규칙을 따르되 그 규칙의 적용은 아주 엄격하며, 놀이 그 자체에 목적이 있고 ‘일상생활’과는 다른 긴장, 즐거움, 의식을 수반한다.
놀이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인류와 만나게 될까요?
첫 번째는 정의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놀이라는 것은 자발적인 행위, 자유 그 자체이다. 본인의 선택에 의해 다음 행위가 이어지고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기능이있다. 산업사회에서의 지시적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인류가 아닌 창의적인 사고가 놀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놀이 중에는 그룹으로 진행되는 놀이도 있고 놀이 공동체 속에서는 다른 형식의 놀이가 진행된다. 놀이 속에서 규칙을 정하고 수긍하면서 융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세가 형성된다. 아이와 아이 관계에서 많은 변수가 생겨나고 대처하는 능력이 만들어진다. 잠을 자야 지 뇌가 휴식을 할 수 있고, 놀아야지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싹 틀지 않을 까요?부모는 이 싹이 자랄 수 있게 필요할 때 비를 맞게 해 주고 햇빛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알아가는 것, 즉 공부는 정말 달콤한 열매 같은 것이다. 아이가 이 열매를 베어 물 때까지 기다려주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사진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Free-Photos님의 이미지 입니다.

참고 자료: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_요한 하위징아_연암서가